위상공간(topological space)

위상공간이란 위상(topology)이 주어져 있는 집합을 의미합니다. 집합 X에 위상 \mathcal{T}이 주어져 있다는 것은, \mathcal{T}\subset \mathcal{P}(X)이며, \mathcal{T}가 다음을 만족함을 의미합니다.

  1. \emptyset, X\in \mathcal{T}
  2. U_\alpha\in \mathcal{T} \text{ for all } \alpha \in I \Rightarrow \bigcup_{\alpha\in I}U_\alpha \in \mathcal{T}
  3. U_1, U_2 \in \mathcal{T}\Rightarrow U_1 \cap U_2 \in \mathcal{T}

(즉, 하나의 집합에는 여러가지 종류의 위상이 주어질 수 있습니다.) 이 때, \mathcal{T}의 원소들을 열린(open) 집합이라고 부릅니다. 즉, 열린 집합이란 말로 쉽게 풀어서 설명하자면 위의 공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공집합과 전체 공간 X는 열린 집합입니다.
  2. 임의의 개수의 열린 집합들의 합집합 역시 열린 집합입니다.
  3. 유한한 개수의 열린 집합들의 교집합 또한 열린 집합입니다.

neighborhoods

이 열린 집합의 개념은 ‘근처’의 개념을 추상화 한 것입니다. 어떤 점 p\in X에 대해 p를 포함하는 열린 집합을 p이웃(neighborhood), 혹은 열린 이웃이라고 합니다. 어떤 점 p의 근처라는 개념은 p의 모든 이웃들의 집합으로 완전히 표현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어떤 점p의 근처라는 것은 p와 가까운 점들을 의미하지만, 어떤 가까운 점을 고르더라도, 그 점보다도 p와 가까운 점이 있어서 근처라는 이름이 무색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근처라는 개념은 어떤 하나의 점, 혹은 점들의 집합으로 표현되기 힘들며, 그래서 이와 같이 ‘이웃들의 집합’과 같이 추상적인 개념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위의 세 가지의 공리를 통해 만들어지는 위상공간은 우리가 직관적으로 생각하는 ‘근처’의 개념을 정확히 나타내줍니다.

흔히 위상수학을 ‘고무판 기하학’이라 부릅니다. 이는 고무판을 늘이거나 줄일 때 근처의 개념이 바뀌지 않기 때문에 위상수학에서 동일한 대상으로 취급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커피잔은 납작하게 눌러보면 손잡이 부분만 남기 때문에 도넛과 위상수학적으로 동일한 모양입니다. 다만 주의할 점은, 위상수학에서 동일하게 취급되는 두 ‘모양’이 항상 고무처럼 늘이거나 줄여서 한 모양에서 다른 모양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정사각형 모양 종이의 마주보는 변을 그대로 붙이면 원통형의 띠(strip)가 됩니다. 그리고 만약 한 번 꼬아서 붙이면 꼬인 띠가 됩니다. (아래 사진은 SeifertView로 만든 사진입니다.)

한번 붙이고 나면 원통형 띠를 늘이거나 줄여서 한 번 꼬인 띠로 만들 수 없습니다. 하지만 위상수학에서는 이 둘을 같은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근처’의 개념이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어찌보면 위상공간은 국소적(local)으로 정의되기 때문에 전체적(global)인 모습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잘못된 생각인 것이, 띠의 위에 살고 있는 개미의 입장에서는, 원통형 띠나 한 번 꼬인 띠나 똑같이 느껴질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그 둘이 ‘똑같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신, 원통형 띠를 한 번 꼬인 띠로 (늘이거나 줄여서) 연속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은 띠의 속성이 아니라 띠가 ‘표현되어져 있는’ 공간의 속성, 즉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 유클리드 공간 \mathbb{R}^3의 속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3차원 공간과는 달리 4차원, 즉 \mathbb{R}^4 에서는 원통형 띠가 연속적인 변화를 통해 한 번 꼬인 띠의 형태로 될 수 있습니다.

위상수학적으로 동등한 위상공간을 위상동형(homeomorphic)이라 말하며 \mathbb{R}^3를 비롯해서 어떤 주변 공간(ambient space)에 포함(embedded)되어 있는 두 공간이 서로 고무판을 늘이고 줄이듯이 연속적으로 변환시킬 수 있다면 이 둘을 isotopic하다고 합니다. 정리하자면, 위상수학은 기본적으로 위상공간 자체의 성질을 보는 것이므로 위 그림의 경우처럼 주변 공간에 어떻게 포함(embedding)되어져 있는지와 isotopy만을 보고 같은 공간이 다르다고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위에 소개된 위상공간의 세 가지 공리는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 열린 집합은 임의로 합집합 했을 때 여전히 열린 집합이 되지만 교집합의 경우 유한 번만 교집합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어쩌면 이 비대칭성이 위상수학을 그토록 흥미롭고 풍성한 학문이 되게 된 원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비대칭의 원인은 위의 세 가지 공리와 동치인 쿠라토프스키 닫힘 공리(Kuratowski closure axiom)를 통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1], [2]

쿠라토프스키 닫힘 공리는 공간 X의 점과 부분집합 간에 ‘닿아있다’는 관계를 통해 위상공간을 정의합니다. 이 ‘닿아있다’는 성질은 다음과 같은 성질을 만족합니다.

  1. 어떠한 점도 공집합과 닿아있지 않다
  2. xA의 원소라면, xA에 닿아있다.
  3. xA\cup B에 닿아있다면, xA에 닿아있거나 B에 닿아있다.
  4. xA에 닿아있고 A의 모든 원소가 B에 닿아있으면 xB에 닿아있다.

이 네 가지 공리는 우리의 경험과 잘 일치해서, 받아들일 수 있어보입니다. 결국 비대칭성은 3번과 4번 공리의 차이점에서 오는 것입니다.

쿠라토스키 닫힘 공리에서 ‘닿아있다’는 개념은, 수학적으로 닫힘(closure)이라는 말로 표현됩니다. 어떤 부분집합 A에 닿아있는 모든 점들의 집합을 A의 닫힘이라 부르며, \text{cl}(A)와 같이 씁니다.

아무튼 이렇게 공리적으로 정의된 위상공간으로부터 연속(continuous)의 개념이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게 정의되며, 이는 모든 위상수학의 기반이 됩니다. 또, 해석학과 기하학에서도 위상공간의 특수한 경우인 거리공간(metric space)이 사용되며 위상공간의 개념은 수학 전반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참고문헌:

[1] mathoverflow.net/questions/19152/why-is-a-topology-made-up-of-open-sets

[2] en.wikipedia.org/wiki/Kuratowski_closure_axioms


더 읽을거리:

  1. J. R. Munkres, Topology (2nd Edition), Prentice Hall
    • 기초적인 위상수학에 대해 잘 설명되어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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